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네이피어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첫 번째 결혼에서는 두 명의 자녀를, 두 번째 결혼에서는 무려 열 명의 자녀를 얻었다. 첫 번째 부인인 엘리자베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아치볼드(1576~1645)가 존 네이피어의 작위를 상속받았는데, 이 아들이 정치적 재능이 있었는지 가문을 빛내는(?) 데에 성공한다. 아치볼드 네이피어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[[제임스 1세]]로 즉위할 때 궁정 신사로서 함께 잉글랜드로 따라가 [[웨스트민스터 사원]]에서의 대관식에도 참석했고, 존 네이피어 사후에는 제 9대 머치스턴의 레어드 작위를 물려받고 이후 스코틀랜드의 재무관, 대법관 등을 비롯한 중책을 역임했으며, 1627년에는 노바스코샤 준남작 작위를 받았으며, 또한 제1대 로드 네이피어(Lord Naiper)로 불리게 된다.[* 존 네이피어의 대까지는 Sir로 불리던 호칭이 아치볼드 네이피어의 대에 이르러 Lord(스코틀랜드에서 남작에 해당하는 호칭)가 되었다. 덧붙여 노바스코샤 준남작 작위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쳐질 때 폐지된다.][* 덕분에 [[찰스 1세]]의 시대에도 그와 그의 아들은 왕당파로서 왕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데, 이 탓에 70세가 넘은 말년에 고생을 좀 하게 된다.] 존 네이피어에 대해 그가 [[남작]]이었다는 서술들이 제법 보이는데, 이는 그의 아들 대에서부터 그에 해당하는 작위를 창설하여 세습하게 된 것을 오해했거나 Laird의 번역을 공후백자남의 [[오등작]]에 맞추려다 오역한 것으로 생각된다. 여담으로, 이후 네이피어 가문은 존 네이피어의 증손자이자 제3대 로드 네이피어인 아치볼드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함에 따라, 존 네이피어의 증손녀인 마가렛에게 이어진다. 이 때 부계 계승이 단절되어, 마가렛의 외손자인 프랜시스 스콧이 성을 네이피어로 바꾸고 네이피어 가문을 이었다. 그 고손자가 19세기 후반에 [[인도 제국]] 총독을 지내는 프랜시스 네이피어이며, 이 때부터는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에 더하여 영국의 남작(baron) 가문이 되었다.[* Lord of Naiper는 (스코틀랜드-잉글랜드 통합 이전부터 내려오는) 스코틀랜드에 속한 작위이며, Baron of Ettrick은 연합왕국에 속한 작위이다. Baron의 격에 있어서도 스코틀랜드에서의 그것과 연합왕국에서의 그것은 차이가 있다. 스코틀랜드에서의 Baron은 귀족이긴 하나 매매가 가능한 것이라서 Lord보다 그 격이 낮다.][* 현 네이피어 가문 수장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Francis_Napier,_15th_Lord_Napier|프랜시스 네이피어]]의 후계자는 딸이기 때문에, 다음대부터는 로드 네이피어와 남성만 승계가 가능한 에트릭 남작위는 다른 사람이 보유하게 될 것이다.] 오늘날 존 네이피어가 태어난 장소이자 말년을 보냈던 머치스턴 성은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의 교정 안에 보존되어 있다. [[분류:스코틀랜드의 과학자]][[분류:에든버러 출신 인물]][[분류:영국의 물리학자]][[분류:영국의 수학자]][[분류:1550년 출생]][[분류:1617년 사망]][[분류: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출신]][[분류:통풍으로 죽은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